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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0-10 17:00
[보도자료]대통령기록관에 ‘간첩단 주모자’가 쓴 현판 철거하라
 글쓴이 : 블루유니온
조회 : 1,743  

대통령기록관은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록을 철저히 수집 관리하여 국민에게 제공함으로써, 올바른 역사인식의 기틀을 마련하고 국정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설립된 대한민국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소속의 기록관이다.

하지만 현재의 대통령기념기록전시관의 현판 휘호 작성자는 1968년 8월 통혁당 간첩단 사건의 주모자중 한 사람으로 아직까지 전향하지 않은채 반국가적인 행위를 일삼고 있는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가 작성한 것이다. 그는 이재정이 총장으로 있는 성공회대의 석좌교수이며 박성준 교수 (한명숙 남편)을 통혁당간첩단 사건으로 포섭한 인물이다. 또한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위원장 고영주)에 의하여 친북·반국가 행위 대상자 (학계)에 수록된  인물이다.

 ‘최근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과 같이 대한민국 현직 국회희원 까지 반국가적인 행위에 앞장 서는 마당에 자유대한민국에 위해를 끼치고 반국가적인 테러행위를 획책한 자가 대통령기념기록전시관의 현판 휘호를 썼고 버젓히 그것을 자랑스럽게 걸고 있는 정부기관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비영리 시민 안보단체 블루유니온은 지난 8일 대통령기록관에 유선으로 현판 휘호 작성자 확인을 요청하였고 이에 기록관 측은 신영복 교수가 작성한 것이 맞으며 98년도 개관식에 처음 사용되었다고 밝혔다.

블루유니온은 이에 10월 8일 국민신문고를 통해 정식으로 국무조정실을 통하여현판교체 요청을 했으며 10일에는 안전행정부에도 현판교체를 요청하였다.

또한 블루유니온은 사이버안보감시단과 함께 대통령기록관에 내걸린 간첩단 주모자 신영복 교수의 현판을 철거하기 위해 국민신문고를 통한 민원운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 시민 20여명이 대통령기록관 현판철거 요청민원을 접수한 상황이다.  http://cafe.naver.com/iblueeyes/32509

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에는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록을 철저히 수집·관리하여 국민에게 적극 제공함으로써 올바른 역사인식의 기틀을 마련하고, 국정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여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다’라고 적고 있다.

권유미 블루유니온 대표는 “대한민국을 공산 적화통일 시키기 위해 활동해 20년간 수감생활을 하고, 2013년 현재까지 전향하지 않은 자의 글씨를 버젓이 내건 대통령기념관이 무슨 근거로 ‘올바른 역사인식의 기틀을 마련’한다고 주장하는가”라며 “올바른 역사인식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제가 바로 적화통일 활동가의 현판을 대통령기록관에서 때어 내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신영복 참고자료】
 
■ 통혁당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소위 '진보 지식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박성준-신영복 등의 행적이 아래와 같이 담겨 있다. (<월간조선> 2006년 5월호 보도인용)

1968년 검거 당시 박성준은 서울대 경제학과 4학년이었다. 그는 1968년 1심에서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고 이듬해 대법원에서 형(刑)이 확정됐다. 박성준은 대학 선배였던 신영복으로부터 포섭돼 사상교육과 학습을 받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박성준은 신영복으로, 신영복은 김질락으로, 김질락은 핵심 주범인 김종태로 이어지는 인맥 조직도를 그리고 있다.

1966년 11월 김질락은 자신의 집에서 북괴의 이익이 되는 점을 알면서 신영복과 만나 북괴를 이롭게 하는 행위를 할 목적으로 신영복으로부터 철학 노트 1권을 받고, 육사생도 9명에 대한 교양상황과 ‘박성준을 포섭하였다’는 보고를 받았다.

1967년 오후 3시 김질락은 잔디다방에서 신영복으로부터 ‘경제복지회 내에 있는 성원인 박성준을 조정하여 시내 각 대학생 100여 명을 규합, 7월2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명동에 집결시켜 6·8 부정선거 규탄구호를 외치면서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앞 노상까지 데모 행진을 감행했다’는 보고를 받고 신영복을 격려했다.

통혁당 사건 당시 신영복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육사 교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이 사건의 주범들과 직접적으로 연루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간 복역했다. 신영복은 김질락 등 사건의 핵심 인물들과 자주 만나 지시를 받고, 사업 진행상황을 보고했다.

서울大 출신으로 북한과 직접적으로 연결됐던 김질락은 신영복 등 젊은 청년을 포섭하는 일을 했다. 다음은 판결문의 일부이다.

1966년 중순경 김질락은 서울 중구 무교동 소재의 한 다방에서 북괴의 이익이 되는 점을 알면서 김종태를 만나 그에게 ‘신영복을 포섭하였다’고 보고했고, 김종태로부터 ‘신영복에게 교양을 주어 하부조직을 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받아 反국가단체인 북괴를 이롭게 했다. 1966년 8월 서울 서대문구 갈현동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서 신영복에게 ‘육사교관과 생도를 포섭할 것’, ‘월 2~3회씩 집에서 회합할 것’, ‘각자의 활동상황을 정기 회합 時 보고할 것’ 등을 지시하고,《청춘의 노래》라는 불온서적을 제공하여 反국가단체를 이롭게 했다.

검찰은 박성준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음모, 반공법 위반죄를 적용했다.

당시의 검찰 공소장에는 <박성준이 사회주의·공산주의·유물론 등 사회과학 서적은 물론 北이 발행한 불온서적도 열심히 학습했다>고 적시되어 있다.

■ 신영복 교수는 2002년 1월17일 연세대에서 민노당(現 통진당 前身) 당원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자본축적은 근본적 모순체제”, “자본주의 체제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었다.
“자본주의 체제, 종속적 자본주의, 천민적 자본주의가 우리나라에 언제까지 갈 것인가? 나도 몰라.
그러나 논리적 이론적 사고를 한다면 ‘非인간적 근본적 모순구조’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자본 축척은 근본적 모순체제다. 화(和)의 철학을 기초해서 만들어 가야한다. 억압적 구조에서 취약역량을 가지고 희망을 만들어 가야하는 것이다.
힘들어도 샛길은 없다. 사회를 바꾸어 내자. 정말 황폐화된 인간관계 삶의 일부로서 실천해야한다. 운동의 일부가 아니라 삶의 일부로 행할 때 새로운 패러다임이 탄생할 것이다.”
申 교수는 2003년 10월 송두율이 입국하자, ‘송두율 교수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1000인 성명(2003. 10. 23)’, ‘송두율 교수의 무죄 석방을 촉구하는 사회 원로·인사 성명(2004. 3. 11)’ 및 ‘송두율석방대책위’ 고문 등으로 참여하며 宋 씨 석방투쟁의 전면에 나섰다.
申 교수는 2006년 6월2일 정년퇴임 시 교단을 떠나는 소회를 묻자 “진보적 학풍의 성공회대였기 때문에 좌파(左派)색깔이 확실한 나 같은 사람이 안정적으로 학문에 매진할 수 있었다”면서 “학생들과 격의 없이 어울렸던 것들이 가장 큰 추억이며 퇴임 후에도 변함없이 젊은 사람들과 소통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申 교수는 또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전국교수 1000인 성명(2004. 10.27)’, ‘6.15공동선언, 10.4선언 이행 및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각계 인사 공동선언(2008. 6. 14)’ 등에 참여해 국보법 폐지와 6.15 및 10.4선언 이행 촉구에도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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